[단독] 사촌들도 막판 장·차남 측 지지…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 막전막후

입력 2024-03-29 13:54   수정 2024-03-29 17:32

이 기사는 03월 29일 13:5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가족도, 창업자 절친도 설득하지 못했는 데 소액주주들 마음을 어떻게 돌리겠습니까."

한미약품그룹 '남매의 난'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한 재계 관계자가 이번 경영권 분쟁이 끝난 뒤 내놓은 한 줄 관전평이다.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장·차남 측이 승리한 건 결국 모녀가 추진한 OCI그룹과의 통합 추진안의 타당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개인의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주들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추진한 OCI와의 통합 작업으로 인해 모녀 측은 결국 회사 경영권까지 내놓게 됐다.
사촌 지분 3%가 승패 갈라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의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되던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의 사촌들은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27일 마음을 돌려 장·차남 측을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들의 지분율은 약 3%에 달했다.

국민연금이 모녀 측에 힘을 실어주면서 시장에선 장·차남 측의 승산을 높게 보지 않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장·차남과 모녀 측이 소수점 지분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만큼 막판 친척들의 변심이 판세에 미치는 영향력은 컸다. 장·차남 측은 이미 소액주주들의 의결권도 지분율 기준 3% 가까이 확보하고 있었다. 주총 당일 장·차남은 당당한 발걸음으로 주총장에 들어선 반면 모녀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며 주총장에 나타나지 않은 배경이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회장의 고향 후배로 한미사이언스 지분 12.15%를 보유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을 비롯해 일가 친척들과 소액주주가 한마음으로 장·차남 측을 지지한 건 결국 모녀가 추진한 OCI그룹과의 대주주 지분 맞교환 계약의 타당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이종산업 간의 결합, 한국의 바이엘 탄생 등 미사여구로 포장했지만 OCI그룹과의 합병은 결국 송 회장 모녀의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회사가 아닌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결정인 만큼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받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의 압도적 지지받은 장·차남
특히 장·차남 측은 소액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소액주주들은 대주주 지분 맞교환 계약 내용 중 한미사이언스가 OCI홀딩스를 대상으로 하는 24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크게 반발했다. 유증이 실행되면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지분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한미약품그룹의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가 하루아침에 중간 지주사로 바뀐다는 점도 소액주주들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송 회장 모녀가 자신들의 지분을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이지 않고 주당 3만7300원에 OCI그룹에 넘기는 계약을 맺은 것도 소액주주들의 불만을 샀다. 2021년 초 9만원 대까지 올랐던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송 회장 체제에서 맥을 못추고 3만원 대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 대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도 받지 않고 지분을 3만원 대에 팔고 나가면 지금의 주가가 최고점이라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는 게 소액주주들의 불평이었다.

모녀 측은 소액주주의 이런 불만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외활동을 즐기지 않는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은 경영권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모습을 숨기다가 주총을 앞두고 장·차남 측이 기자간담회를 열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급하게 간담회를 열었다. 송 회장은 분쟁 내내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녀 측은 한미약품그룹의 조직 역량을 앞세워 회사 직원들과 소액주주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하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국민연금(지분율 7.66%)의 지지에도 임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동의하는 찬성표는 48%에 그쳤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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